[아래 내용은 영화 내용과는 무관함]


#1

전망이 좋은 집에 살던 날들이 있었다. 
비싼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 언덕위에 위치한 쓰러져가는 빌라이다.
그 빌라에 살던 덩치큰 두 대학생은 주중에는 학교에서 술을 마시다 집에와서는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했었다.
그러니, 집이 엉망일 수 밖에.

주말아침이면 (전날 과음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방청소와 밀린 빨래를 하기 시작했고,
집청소를 마친 햇살 좋은 거실창가에 빨래를 널어두고는 식사 겸, 청소/빨래 완료 기념(!)으로 빼갈에 탕수육을 시켰다.
낮술을 했었다.
나른해진 기분에 주말의 햇살은 더없는 환각제였다.

그리고 뉘엇뉘엇 해지는 저녁쯔음엔 속도 뉘엇뉘엇...



#2

한달에 한두번은 두시간 거리인 집으로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때도 있었다.
일주일 내내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학교에 있다가 유일하게 이성을 목도할 기회다.

옆자리엔 항상 이쁜 여학생이 아닌 누군가 탔었다.
3년 내내...

그래도 출발하는 버스에 먼저 타고 앉아 있으면 괜히 설레~




#3

간만에 회식이라 신나게 마셨더랬다.
이것저것 섞어 마셨더니 머리가 깨질지경.
주말이라고 집에가서 해장라면 하나 끓여먹고, 하루종일 누워서 티뷔 리모콘에 손가락만 꼼지락 꼼지락~

저녁에 동생이 집에 왔다.
2주만에 보니 반갑네, 저녁먹으러 나갔다가 조개찜이 땡겨서 소주 한병 깠다.
아... 난 속이 좋지 않지만, 간만에 만났으니 한잔해~

그리고, 지난주에 길 건너편에 정체를 알수 없는 가게에 생맥주가 기가막히더라.
아... 난 속이 좋지 않지만, 그 맥주는 먹어야 할것 같아. 한잔해~






한심해 보이지? 내가 봐도 그래. 근데 머 어때~

한잔해~ ㅋ

Posted by 떼루 :
6주간의 중국 출장 후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하계휴가를 또 어떻게 보내야 하나...'

집에서 '방콕'??? - 보고 싶었던 영화들은 이미 출장 중에 봐 버렸고, 더운 여름에 집에만 있는 것도 답답할 듯 했다. 아우 생각만 해도 답답하네. 기분 전환은 고사하고, 더 스트레스만 쌓이겠지

해외여행??? - 당장 이번 주말부터 휴가인데 어설프니 돈만 쓰고 오는것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 더위에 어딜가...

뭐 이런 저런 고민 중에, 문득 지리산을 떠올렸고 이미 머릿속에 나는 배낭을 짊어매고 지리산 숲길을 걷고 있더라.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이리하여 시작된 무모했던 지리산 종주. 뭐 대단할 것도 없다. 부모님 따라 어린애들도 간다는 지리산 종주, 여자 혼자서도 다녀온다는 지리산 종주, 산은 혼자가야 제맛이고, 종주로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드문드문 동행도 많이 만날수 있으니 길 잃을 염려는 없다는 지리산, 기본적인 체력만 받쳐준다면 누구나 종주는 가능하다는 지리산... 

이리 하여, 난생 처음으로 혼자서 배낭메고 산행을 떠났다.


용산역. 밤 10:50분 ... 구례구역 새벽 3시 40분 도착

그 밤시간에 용산역에서 등산 차림을 한사람들은 거의 지리산 행이리라. 용산역, 영등포역, 수원역... 간간히 사람들이 기차에 올랐고, 새벽에 도착한 구례구역엔 등산객으로 북적 거렸다. 어디선가 읽은 대로 바로 성삼재행 버스에 올랐다. 좌석은 물론 버스통로까지 사람들로 가득했고, 미쳐 타지 못한 사람들은 택시를 잡고 있었다.

옆자리에 혼자 앉아있던 날래보이던 분은 화엄사 입구에서 혼자 내렸다. 새벽 어둠을 뚫고 혼자 산을 오르다니,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버스는 40분동안 비탈길을 올라 성삼재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잠을 못잤더니, 서서가는 버스에서도 무쟈게 졸린다. 걱정이 앞섰다. 지리산 초행에, 저질체력에, 잠도 못자고 오늘 하루 종일 산행이 감당이 될지... 


성삼재. 새벽 5:00 ...

아직 어두울 시간 안개로 자욱했다. 일행으로 온사람들은 다들 모여 준비 운동을 시작한다. 멀뚱하니 혼자 담배 한대 태우고, 등산화끈을 다시 맸다. 생각보다 컨디션이 괜찮은것 같다. '머 별거 있겠어?'. 손전등 대용으로 갖고 온 q5가 제법 밝다. 괜히 기분도 좋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한시간 정도 걸었다. q5 전지가 금방 닳지는 않을지 걱정되서 금방 끄고, 스틱을 꺼내폈다. 어스름한 새벽빛에 제법 걸을만 하다. 스틱은 이렇게 쓰는게 맞는건가... 달그락 달그락...


노고단 대피소. 새벽 5:50 ...

사람들이 제법 모여 앉아 아침 준비로 부산하다. 나도 왠지 멀 먹어야 될것 같았다. 라면을 끓이기엔 조금 어설프고, 터미널에서 사온 김밥 한줄 먹고, 생수통에 물을 채워 바로 출발 했다. 2박 3일로 있으려던 당초 계획은, 아마 이때 1박 2일로 바꿨을 것이다. 난 그냥 밥해먹기가 귀찮고... ;;; 


날씨가 오묘하다. 비 피한다고 하루 일찍 온거긴 하지만, 여기 날씨는 듣던대로 예보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노고단은 산림안식기간이라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출입된다고 해도 안가봤을테다. 



삼도봉. 아침 8:30 ...

카메라 꺼내기 귀찮아 그냥 배낭에 넣어둔채 걷기만 했다. 날씨도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고, 배낭의 무게가 만만찮으니, 그냥 계속 걸을수 밖에 없었다. 쉴려고 배낭 내렸다 다시 지는 것도 일이다. 계속 걷는 중에 빗물을 잔뜩 머금은 나뭇가지에 한번씩 치인다. 나뭇가지에 서려있던 차가운 빗물이 우수수 떨어져 머리와 어께를 적시면 제법 상쾌하다. 그 기운으로 계속 걷는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삼도봉. 세 개의 도 - 전라남도/전라북도/경상남도가 만나는 지점이란다. 뭐 그렇다니 카메라 한번 꺼냈다. 옆에서 같이 쉬고 있던 어려보이는 남자 둘이 반야봉에 오르니 마니를 갖고 실랑이를 벌인다. '반야봉이 나름 힘든 코스라 하니 한번 가보자.', '천왕봉 가는 길에 여기보다 더 힘든 코스도 많으니 그냥 가자.'... 앞으로 더 힘든 길도 많다는 얘기에 슬슬 걱정도 된다. 힘든길이라... 힘든길이라... 어쩌지, 난 벌써 힘드네. ㅋ

노고단에서 5.5km를 걸었다. 천왕봉까지 20km. 내일 갈곳이라는 생각에 별로 감이 안온다. 20km... 평지에선 자전거로 한시간 거린데 말이지...



연하천 대피소. 10:58 ...


지도상으로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는 한시간 거리. 벽소령까지 12시에 도착 할 생각에 맘이 슬슬 조급해졌다. 다리도 살짝 노곤하고, 배낭을 맨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웹질로 알아본 바, 벽소령에서 세석평전까지 제법 길이 험하다던데 슬슬 걱정이 앞선다. 점심은 벽소령에서 해결할 생각에 연하천에선 물통에 물만 채우고, 핫브레이크 하나 꺼내 먹었다. 10분 정도 쉬고, 다시 길을 나서자, 바로 앞에서 다람쥐 한마리가 앞서 간다. 길 따라 안내해 주듯 내 앞을 가다 서다 한다. 혼자 피식 웃었다. 왠지 와우 생각이 났... ;;;

뭔가... 이 험한 길은... 40분 정도 걸었는데, 벽소령 까지는 아직 1.5km남았다. 산길에서의 거리는 정말 감이 안온다. 1시간 거리? 그거 누구 기준인가...



벽소령 대피소. 12:40 ...


먼저 쉬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곤함이 보인다. 그렇지. 나만 힘든건 아니었지. 이건 위로인가;;; 점심을 멀로 먹을까 하다가, 김밥 한줄 놔두면 상하겠다 싶어서 핑계김에 그걸로 때웠다. 먼저 한번 만났던 20대 남자커플(!)중 한명이 물 뜨러 갔다가 투덜거리면서 돌아온다. 식수대가 1km 떨어진데 있단다. 길은 연하천에서 오던 길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얘기에 난 그냥 자판기에서 1500원 넣고 포카리스웨트 하나 샀다.;;; 비슷하게 가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오늘 장터목까지 갈꺼라는 사람들이 제법있어, 나도 욕심이 났다. 일단 세석까지는 가보고 생각해봐야 겠지만...... 아. 다리가 후들거린다. 다시 걷는다. 이 길이... 코스중에 가장 길고 지루하고 험한 길이란다.


곰 출현지역은 많았지만, 다람쥐만 숱하게 봤다.ㅎ


비가 온다. 배낭에 침낭을 달아놔서, 레인커버는 안될테고, 우의를 입는 대신 배낭에 둘렀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돌길을 걷고, 기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길은 갈수록 험해졌고, 빗줄기도 제법 쎄다. 진흙에 발이 미끄러워져 조심스러웠다. 이런데서 발이라도 헛딛여 삐기라면, 생각만 해도 난감하다. 무릎에 무리가지 않으려 스틱에 힘을 실었다. 아. 몇시간만에 첨쓰는 스틱을 제법 잘 다룬다 싶다. 괜히 혼자 피식 웃는다. 

쉬는 시간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10분만 걸어도 쉬고 싶은데, 쉴까말까 고민하면서 계속 걸으니, 그냥 계속 걷게 된다. 가뿐 숨으로 바위를 몇차례 올라서 한숨 한번 내쉬고, '쉴까?' 하다가 다시 걷는다. 이젠 내리막도 제법 힘들다. 아니 내리막이 더 힘들다. 쉴만한 데를 만나면, 왠지 조금 더 가면 더 넉넉한데를 만날것 같아서 그냥 걷는다. '본인의 체력을 안배하여, 무리한 산행은 삼가세요'라는 주의팻말이 떠올랐다. 이러다가 그냥 쓰러지는 사람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덜컥 겁난다. 잠깐 쉬자 싶어서 배낭 누일 장소와 앉을 장소를 고른다. 안개는 자욱하고, 비는 잠시 멎었다. 한숨 크게 내쉬고 가뿐 숨을 진정 시켜본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소리도 나지 않는다. 마주보이는 바위 아래는 절벽일테고, 안개가 자욱하니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스산하게 짙은 안개만 지나간다. "정말 아무소리 안나네" 혼자 말했다가 조금 무안해졌다. 그리고 다시 아무소리 나지 않는다. 새소리도, 풀벌레도, 파리도, 벌도, 빗소리도 없다. '스르륵'... 이건 안개 알갱이들이 스치는 소린가. 잠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앞으로 갈길을 생각하면, 그게 더 무섭다. 아... 다시 걸어야지, 머 어째.

이정표를 만나서는 가슴이 설렌다. '얼마나 남았을까. 얼마나 걸었을까.' 매번 실망 스럽다. 아직 몇km 못왔고, 아직 몇km 더 가야 한다. 매번 만나는 이정표마다 나를 한심하게 비웃는 듯 하다. '아직 멀었다. 자슥아~'. 세석찍고 장터목 가는 길에 기운없을때 먹을려고 아껴둔 포카리 스웨트를 깠다. 한캔을 원샷을 해도 모자라다. 캔을 우그려 배낭 겉주머니에 쑤셔넣고 다시 스틱을 잡는다. 에구에구...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3시간 거리... 그거 누구 기준이냐고!!!



세석대피소. 16:10

다음날 오르는 중에 찍은 세석대피소


장터목은 일찌감치 마음 접었겠다. 포카리스웨트도 이미 마셨겠다. 배도 고파오고, 더 이상 걷는 건 산행이 아니라 고문이겠다 싶다. 세석대피소와 천왕봉 가는 갈림길에서 주저없이 세석대피소로 발길을 향했다. 오늘 올 거리는 다 왔다 싶으니 갑자기 다리가 더 아파온다. 이미 몇몇 사람들이 취사장에서 저녁 준비를 한다. 일단 관리소에 비예약자 관련해서 물어보고, 바로 야외식탁에 배낭을 풀고 저녁을 준비했다. 아침 점심은 김밥으로 때웠으니 저녁은 넉넉하게 먹어둬야 겠다 싶다. 어차피 오늘 걸을 길은 다 왔다. 사실 벽소령에서 1박 하려던 거에 비하면 오바한거나 다름 없지. 식수대에서 물을 떠다가 끓여 햇반 하나 데우고, 동태국 하나 끓였다. 반찬은 김치랑 고추참치캔. 오면서 몇번 마주친 20대 남자커플(!)에게 캔 하나 건넨다. 어차피 3일치 식량이니 짐도 줄일겸 나눠줬다. 햇반은 처음 데워 먹어본다. 제법 맛있다. 동태국 뜨끈한 국물이 짭짤하니 맛이 기가 막힌다. 김치는 또 왜케 맛있나. 냠냠. 다 먹은 후에 쓰레기는 따로 봉지에 담고, 코펠, 수저는 준비해온 키친 타올로 닦아서 배낭에 정리했다. 담배 한대 피우고, 비누는 쓸수 없으니 간단하게 세수하고, 수건을 적셔 다리에 묻은 흙을 닦아냈다. 그나마 티셔츠랑 반바지가 쿨맥스라 찝찝하기는 덜 하니 다행.

대기자가 제법 많았다. 여자와 40대 이상 남자 등산객은 방배정을 받았고, 30대 이하는 마루에 자리를 받았다. 등산화 챙겨서 머리 맡에 두고 누웠다. '아... 소주'. 와서 먹을꺼라고 작은 팩소주 두개 사왔더랬다. 누워서 한참 망설였다. '소주 먹어야되는데... 일어날까? 아 귀찮은데... 일어날... 까... 말....... 까... 아.......... 소...주..... zzz~



다음날 새벽 세시부터 나서는 사람들로 잠을 설친다. 네시쯤 옆자리를 보니 20대 남자 커플(--;;)이 자리에 없다. 아마 일출보러 일찍 나섰나보다. 일출이라, 일출이라... 어제 날씨 같았으면 일출은 못볼게 분명하고, 일단은 내몸이 내몸이 아녔다. 비비적 거리다가 4시쯤 일어나 침낭이랑 매트를 정리하고, 배낭을 싸서 아래 야외식탁으로 내려갔다. 아침은 라면을 먹자. 햇반도 하나 먹자. 이 아침에 이렇게 배가 고픈거냐. 김치도 꺼내고, 참치캔도 하나 깠다. 일찍 나서면 점심은 하산해서 먹을수 있다. 라면을 다 끓여 막 먹으려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옆자리에서 같이 아침거리를 내놓는다. 밥을 얼려왔는데, 아직 녹지 않아 먹기가 힘들다면서, 라면 국물에 넣고 같이 끓이면 안되냐고 하길레 그러라고 했다. 자기는 면은 안먹으니 다 건지라던데, 다 건지기엔 미안하니 반만 건진다. 사실 난 면보다 국물이 더 필요한데 말이지. 혼자오신 이분은 어제 성삼재에서 장터목까지 갔다가 다시 세석으로 와서 잤단다. 그리고 오늘 다시 성삼재로 간단다. 지리산은 다섯번째 라며 자기가 든 산악 동호회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젊은 사람들도 많으니 나보고 들란다. 아... 하하... 글쎄요.

아침준비 하는 분들... 뭐가 보이긴 하나. ㅋ




식사 정리도 마치고, 짐도 모두 쌌다. 다시 가자. 6:00






어깨가 아팠다. 다리 근육도 아파오지만,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두끼 먹고 나서 배낭이 가벼워 진건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안개는 자욱하지만, 아침 공기 때문인지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어제 지친 상태로 이길을 걸었다면 분명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을테다. 무리하질 않았던게 다행이었다. 세석평전을 벗어나 촛대봉에 다다를 즈음에 안개가 걷혔다. 내가 걸어 안개를 벗어난건지, 걷는 동안 안개가 물러간건지, 이틀만에 청명한 하늘을 만났다. 반갑다. 앞에 보이는 맑은 하늘에 피로가 가신다.





촛대봉을 내려오면서 더이상 안개는 없었다. 대신 맑은 공기와 시원한 전경, 나무들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들에 줄곧 발걸음이 경쾌해진다. 쉬엄쉬엄 걸으면서 사진도 몇장 찍고, 경치도 즐기면서 걸었다. 제법 시간이 넉넉하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도 여유롭다. 









<... 무슨 봉이더라....>

잠깐 쉰 사이에 앞서 걷는 부녀 두 사람이 보인다.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간간히 똑딱이로 사진을 찍어가며 걷고, 뒤따른 딸로 보이는 처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잘도 다닌다. 난 스틱 두개 들고도 속도가 안난다. 이건 순전히 배낭 무게 때문이다. 무거운 배낭



장터목 대피소. 8:20 ... 

수풀 우거진 오솔길을 벗어나니 갑자기 넓직한 공터에 장터목 대피소가 보인다. 장터로 쓰인 동네란다. 왜 하필 이런 높은데서 장을 세우나. 그사람들도 참... ㅋ

장터목 대피소에서 잠시 쉬는 사이에 어제 계속 마주친 20대 남자 커플이 뒤늦게 오는 걸 만났다. 늦게까지 사람들 드나드는 바람에 다른데서 잔거였단다. 이 친구들도 힘들어 죽겠다는데, 표정은 밝다. "난 이제 나섭니다. 또 봐요~" 또 보겠지. 


천왕봉 오르는 길은 꾸준한 오르막이었다. 어제 오늘 걸은 산길 중 마지막 오르막이라는 생각에 쉬지 않고 단숨에 오른다. 철계단을 오르다가 뒤를 보니 살짝 겁난다. 다시 백무동으로 갈려면 이길을 다니 내려와야 하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지는게 그냥 중산리로 하산해야 겠다 싶었다. 꾸준히 한시간 가량 올라 천왕봉에 다다랐다. 안개는 여전히 드문드문 천왕봉을 감싸돌아, 한쪽은 안개로 자욱하고 반대쪽은 파란 하늘에 운해가 보인다. "이 동네 날씨는 참....ㅋㅋㅋ". 오는 내내 내 사진은 안찍었다만, 나름 인증샷 하나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천왕봉 비석에 폼잡고 사진 하나 찍었다. 그리곤 적당한 곳에 앉아 쉬었다. 잠깐 멍때려준다. 이제 내려가야겠다. 천왕봉 사람들 더 북적거리기 전에 이미 정상의 기분은 충분히 즐긴듯 하다. 다시 배낭을 둘러맸다. 저기 멀찌감치 그 20대 남자커플이 오는게 보인다. 쟤네들은 꼭 다 쉬고 갈려면 오더라.


중산리까지 내리막 4시간, 오르막이 그리울 정도로 힘들다. 아침시간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이 제법 많다. 전날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인사가 어색하더니, 오늘은 인사가 먼저 나온다. 

중산리 지리산 입구,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기분이었다. 지상 강림 기념으로 찬물 샤워 후에 먼저 내려온 20대 남자 커플들과 막걸리 한잔 했다. 준비하지도 않은 서울 가는 버스 예약까지 그 친구들덕에 쉽게 할 수 있었다. 다른 40대 아저씨 한분이랑 넷이서 이래저래 지리산 종주길을 하나씩 되짚어가며 한참을 웃었다. 힘든 시간 이었으니 기억은 오래 남을 것이다.


지리산에 혼자 온사람이라면 뭔가 고민거리를 들고 온다고들 한다. 난 왜 등산경험도 없으면서 겁도 없이 여길 올 생각을 했었나. 분명 뭔가 답답하였을테고, 뭔가 매듭을 풀고 싶었을 테다. 터미널로 향하는 택시 뒷자리에서 바람을 맞아가며 그게 뭔지 한참 생각해봤다.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난 단지 이틀간 쉬지않고 한걸음 내딛는데 집중했고, 넘어지지 않고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해가며 바위에 스틱을 짚어 오르던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온몸에 피로가 넘쳐도, 땀은 찬바람으로 식히고, 가쁜 숨은 한번 깊게 몰아쉬면서 다시 한걸음을 시작했던 그 때 기분은 오랫동안 남아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간간히 머리로 나뭇가지를 스칠때 우수수 떨어진 차가운 물 세례,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던 햇살들까지 한동안 잊지 못할것 같았다. 
Posted by 떼루 :
간만에 있던 회식자리에서 술이 살짝 오를 즈음에 출장가라는 얘기는, 술기운 base로 괜한 열혈기운을 북돋아주기 충분했다. 그래서 낼름 yes를 외쳤더랬다. 


출장 나간지 2년이 넘었더랬다. 
좀 느슨한 기분이 드는 때였고, 
게다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머리가 복잡한 때였다.



만만치 않은 중국출장.
만만치 않았던 일들.



대륙에서 40일 남짓 보내고, 귀국했다.
매번 그렇지만, 출장 귀국 즈음이면 조금은 아쉽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황망했다.

글쎄... 왜 그랬을까.



- 나름 선선했던 연태와는 달리, 서울은 좀 더웠다. 귀국한날 나름 고생한 아들 잠자리 시원(!)하라고 에어컨에 선풍기까지 두신 어머니의 보살핌에 아들은 다음날 목감기 증세를 얻었다. 회사 지침에 따라 출근하자마자 진찰 받고 신종플루는 아니라는 진단은 받았지만, 귀국후 술약속들은 미뤄둘수 밖에... 한 주는 그냥 콧물, 재채기, 기침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중국발 플루 아니냐는 주위 의심의 눈초리도 같이 달고 살았다. 콜록콜록~

- 출장 전부터 생각해둔 놋북 처분 생각에, 콜록거리며 아끼던 맥북블랙 중고 장터에 올렸다. 다음날 구매자 나타나서 바로 MBP 주문했고, 그날 밤에 맥북블랙 넘겨주고, 다음날 MBP 택배 받았다. 정든 이를 떠나는 섭섭함과, 오매불망 바라보다 결국 목도한 반가움이 순식간에 교차하는 기분이다. 냉탕/온탕 뭐 그런... ㅋ

- 컨디션이 제법 좋지 않았다. 출장중에 운동량을 생각하면 그럴수 있겠다 싶어, 자전거 타면서 회복 중이다만, 신나게 달려도 이전 기분같지 않다.






- 결국 기분 탓인가보다 했다. 
이런 상태로 가만 자리에 있는건 도리어 위험하더라.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물면 어두운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거든.






- 다음 주 휴가는 어딜 좀 한참 걷다와야 될듯 하다. 
어딜 다녀온다고 뭐가 달라진다는 기대는 머 어릴때나 하던 거긴 하지만,
그래도, 가만 있는거 보단 나을터이니...


- 그리고 어딜 간다는 생각에 살짝 들뜨고 막 이런다. ㅋ
Posted by 떼루 :
안 바쁠 시기... 웹질로만 시간을 보내기엔 하루는 너무 길지말입니다. ㅋ

멍연아 기사에 트위터를 하니 어쩌너 하는 글을 보고도 뭐 그러려니 했다만, 여기저기 블로그 돌아다니다보니 제법 자주 눈에 띄였다. 이게 뭔가 싶어서 일단 가입... 어차피 시간은 많지 말입니다.





미투랑은 다르게 개방적인 단문 블로그 서비스다.

적응도 안되고,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일단 닥치고 follow 등록을 해 놓구 올라오는 글들과 오가는 댓글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틈에 섞여 같이 재잘거리는 재미다. 그리고, 유명인의 업뎃을 동시에 본다는 게 왠지 동시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신기한 기분이 드는게다.

김연아, 심상정, 에픽하이, 이파니(<- 나 하는 중에 가입한듯 ㅋ), 미쉘 위, 이효리...



말해서 뭐하나...
스타 빌드오더 백날 외워봤자, 초반에 달려오는 저글링 떼거리에 당해봐야 적응 되는게지.





- 트위터 홈 : http://twitter.com/
- 한국 트위터 사용자 소개 페이지 : http://tweet.xguru.net/selfintro
- tehloo is using twitter! : http://twitter.com/tehloo


+ 브라우저로 업뎃이든 살펴보는게 가능하지만, 전용 클라이언트가 주기적으로 update 해주기도 한다.
TweetDeck이 제법 쓸만한듯.
Posted by 떼루 :
찌질한 그대들의 또 다른 일상을 훔쳐볼 기회가 온 것이다. 반갑다!  회사일로 차일 피일 미루다가 놓친 '밤과 낮'이 천추의 한의 되어 이번 영화는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에 기필코 보리라 마음 먹었고, 마음 먹은 김에 바로 다음날 퇴근 후에 공항CGV를 찾았다. 목동CGV/공항CGV는 주차비때문에 참 정떨어진다. --+








그네들(극중 나이로도 나보다 형/누나 들이다... --; )이나 나나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내 짝'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걸 찾았다고,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라고 두눈을 반짝일때 괜히 '별거 있겠어?' 하면서 뒷목을 긁적거리긴 하지만, 차라리 '별거 없다'는거 다 알면서도 그냥 나도 '두눈을 반짝'거려 보고 싶은것이다. 그냥 속는 거라고, 아닌거라고, 다 똑같은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 그러면서 그래도 뭐가 씌인듯 그런 자랑 한번 해보고 싶은거다. 씌인거든 안씌인거든 그냥 그들이 부러운거다.

그러면서 혼자 괜히 지난 시간들을 한번씩 들쳐 보게된다.
'그때 그랬어야 하는데...',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때 왜 그렇게 됀건지...',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은 이러지 않았을텐데...', '그때 그 애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텐데...'

관계에 대한 열망.
그건 쉽사리 놓지 못한다. 지난 기억을 원망할 정도로...

그리고 어렵다.




보고 나면 소주를 한잔 했어야 하는데...

... 그냥 혼자 캔맥 두개 까는 걸로 퉁~ ㅋ
Posted by 떼루 :

비가 오락가락 하던 남양주.

아무 생각없이 들른 종합촬영소











돌아다니면서 허기진 배는

촬영소 초입에 '짚풀'의 닭백숙으로 회복~ ㅋ


Posted by 떼루 :

아무 생각이 없었다.

보도블럭 넘을 자세를 취하고는 앞 브레이크를 잡아버렸다.



왜 그랬나.

자출 4년 만에 첫 자빠링....








퇴근후에 멀끔히 자전거를 쳐다보다가,

저 뒷 드레일러가 참 섹시(!)해 보인다.

이 얘기는 친구 불러다가 방에서 술먹다가도 한것 같다.



하지만 자전거랑 결혼할수도 없는 일..

그냥 오늘은 첫 자빠링 기념 포스팅. --;;



오늘의 교훈이라면...

헬멧은 꼭 쓰쟈 (아침에 안쓰고 갔다간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을지두...)

끝. ㅋ








그리고...



Posted by 떼루 :
박감독님에 대해 더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하였던 것은 '친절한 금자씨'에 이어 '사이보그...' 였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실망하였던 것은 순전히 '올드보이'에 대한 충격이 가시질 않았던 것이고, 한번 더 스크린으로 황홀감을 맛보고 싶었을게다. 가만 시선을 고정하고, 귀를 열고만 있어도 알아서 롤러코스터를 태워주던 '올드보이'였기에...

그래도, 잘 만들어진 영화인 - 공동경비구역 JSA를 좋아했고, 특히 서슬퍼런 복수의 감정을 가슴팍에 꽂아주는 듯한 '복수는 나의 것'은 여전히 개인적으로 손꼽는 명작으로 친다. 그리고, 기대하진 않는다고 해도 박찬욱 감독의 앞으로 나올 영화는 아마 꼬박꼬박 챙겨보게 될테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분이고, 그런 영화중에 내가 충분히 즐길수 있을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무한도전 이번주 방영분이 재미없었다면, 다음주 껀 재밌을수 있는거다. 그렇다. 난 박찬욱 감독의 팬, 무한도전의 팬인것이다. 뭐 그렇다는 얘기고...









'박쥐'에 대한 기대는 두가지였다.


1. 씨네21 기사중에 적힌 박감독님의 멘트 "송강호, 의외로 섹시하더라." - 맞다. 난 송강호의 팬이기도 하다.==;

머리숱 많으면 다들 저런 사진 가능하다. -ㅠ-




2. ... 그래도 박감독님의 신작이자나.





잠깐 영화 얘기를 하자면...






죄의식에 대한 영화 일수도 있고,
연애에 대한 영화 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영화 보는 내내 두가지의 흐름을 쫓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박쥐'는 보는 사람이 읽어가는 영화였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뱀파이어를 소재로한 영화인 '렛미인'을 공포영화/성장영화/서스펜스영화/멜로영화/슬래셔 하드고어 영화... 중 한가지로 해석하기 나름인 것 처럼. 한편 장면장면 불편한 부분은 있었지만, 왜 이전 '금자씨' 만큼 불편하고 지겹진 않았을까. 그건 정말 '올드보이'때문이었고, '박쥐'가 흥미로웠던 것은 '금자씨' 때문이었나?

영화는 한번 더 보고 싶다.
다시 한번 태주와 상현의 조심스러운 일탈을 같이 맘졸이며 보고 싶다.



사족 - '그 장면'에서 성기노출이 없었다면, 돌아서면서 씨익 웃는 상현의 의도는 무엇으로 파악되었을까.
그리고, '마케팅'이라니... 설마 그 장면을 넣는다고, 몰려드는 여성팬들을 기대했을까? 조인성이 그랬으면 몰라도...
Posted by 떼루 :

100년만의 낚시질

2009. 5. 7. 01:00 from 사진 이야기
강화도. 국화 저수지...



낚시 초보 8명이서 낚시터 하나 빌려 쿵쾅거리며 시끄럽게 떠드니 고기가 낚일리가 만무...

찌는 드리워 놓고 사진이나 찍으면서 100년만의 낚시질 끝....




... 그리고 간만의 맑은 공기와 탁트인 전경이 미소 짓게 만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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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똥파리'

2009. 4. 22. 01:24 from 영화이야기
어딘가의 영화평에서 '어떤 여자를 무자비하게 패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이 대목을 보고, 뭐 누구 데리고 가서 볼 영화는 아니구나 싶었다. 어느 화요일 퇴근 시간, 퇴근 후의 시간이 부담스러운 기분에 집근처 영화관에서 딱 한시간 뒤에 시작한다는걸 보고는... 그 한시간 후에는, 스크린 정면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혼자 앉아 간만에 영화감상~






너무 지나치다 싶은 비약일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등장 인물들의 열악한 가족환경, 내 어린기억의 환기, 폭력에 대한 무기력함... 비슷한 실제 주위 인물들과의 오버랩, 왠지 영화 이전 기억에 남아 있는 그 까칠한 수염과 담배 연기, 걸죽한 말투... 흔들리는 카메라.

영화에 몰입할수 밖에 없었던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들 중 하나 이다.

객관적인 이유들을 들자면, 감독겸 주연배우의 '전직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원활한 욕지꺼리, 그리고 연기력
식상할뻔한 스토리임에도 편집의 승리라 할 정도의 참신하게 감정선을 읽어가는 플롯 구성...

뭐 이정도...
그리고,

폭력의 순환, 그 매정함.
지겹게 비루한 '핏줄'이라는 것에 대한 회한




영화 보고 난 후...
내뱉은 한숨 섞은 담배 연기와....

징그러울 정도로 가슴이 아리는 이런 느낌은 대체 뭔지...



그리고 매표소에서 나눠준 '똥파리'라고 적힌 정말 파리가 그려진 이 핸드폰 줄은 정말 쓰라고 준건지... --;;;


Posted by 떼루 :